위대한 주석님의 회고록갈피에서 ―《배움의 천리길》 ―

Date: 16/03/2019 | Source: Ryugyong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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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주석님의 회고록갈피에서

― 《배움의 천리길》 ―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세기와 더불어》(1권)에는 주석님께서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신데 대하여 회고하신 내용이 있다.

주체12(1923)년초 위대한 주석님의 아버님이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 주석님께 이제는 소학교를 졸업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장차 어떻게 할 생각인가고 물으시였다. 당시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중국동북지방의 팔도구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시면서 소학교를 다니고계시였다.

상급학교에 가서 공부를 더하고 싶다는 위대한 주석님의 말씀을 들으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심중한 표현으로 아드님을 바라보시다가 이제부터는 조선에 나가서 공부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옆에 앉아계시던 위대한 주석님의 어머님이신 강반석녀사께서도 놀라시면서 아직 나이도 어린데 가까운 고장에 보냈으면 하는 의향을 말씀드리였다. 하지만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당장은 섭섭하고 허전하더라도 아드님을 기어이 조선에 내보내야겠다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이제 다시 조선에 나가면 그보다 더 큰 고생도 할수 있다고 하시며 조선에서 태여난 남아라면 마땅히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 네가 조선에 나가서 우리 나라가 왜 망했는가 하는것만 똑똑히 알아도 그것은 큰 소득이다, 고향에 나가서 우리 인민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 있는가 하는걸 체험해보면 네가 할바를 잘 알게 될것이라는 말씀을 하시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아버님의 뜻대로 조선에 나가 공부하겠다고 말씀드리였다.

당시로 말하면 미국이나 일본 같은데 가야 개명도 하고 학문도 닦을수 있다고 생각하는것이 하나의 시대적풍조로 되던 시기였고 조선에서도 돈냥이나 있는 집 자식들은 저마다 보따리를 싸들고 외국류학의 길에 오르던 때였다.

모두가 외국행을 할 때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조선행을 하게 되시였다.

그때를 회고하여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아버지의 사고방식이 아주 독특하고 옳은 처사였다고 하시며 어쨌든 우리 아버지가 열두살도 되지 않는 자식을 당시는 무인지경이나 다름 없었던 천리길에 홀로 내세운것을 보면 보통성미가 아니였다고, 그 성미가 오히려 나에게는 힘으로 되고 믿음으로 되였다고 회고하시였다.

떠나갈 날이 다되자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위대한 주석님께 팔도구에서 만경대가 천리인데 혼자서 갈수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갈수 있다는 주석님의 대답을 들으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목책에 로정도를 그려주시였다.

후창에서 아무데, 화평에서 아무데, 어데어데까지 그리고 그 어간이 몇리라는것도 써주고 전보는 두번 치되 한번은 강계에서 치고 한번은 평양에서 치라는것까지 상세히 알려주시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팔도구를 떠나시던 날은 주체12(1923)년 3월 16일이였다.

아침부터 눈보라가 일고 바람이 사납게 불었지만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결단코 조국에로의 배움의 천리길에 오르시였다.

사나운 눈보라와 강추위속에 가야 할 천리중 500리이상은 무인지경이나 다름없는 험산준령이였고 대낮에도 맹수들이 어슬렁거리는 수림도 있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헤치셔야 할 천리길은 상상을 초월하는 험난한 길이였다.

바로 이런 길을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순간의 주저와 동요도 없이 과감히 헤치시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때를 돌이켜보시며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천리길을 걸으면서 고생을 퍼그나 했다, 직고개나 개고개(명문고개)와 같은 고개를 넘을 때는 정말 혼이 났다, 오가산령은 하루종일 넘었다, 아무리 걸어도 고개가 끝이 나지 않고 새 고개가 연방 나타나군 하였다고 감회깊이 쓰시였다.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시며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우리 인민의 참모습을 보게 되시였다.

험준한 오가산령을 넘으시느라 발이 부르트신 위대한 주석님께 딱총을 놔드린 한 이름모를 로인, 발이 아파 신고하시는 위대한 주석님을 발구에 태워드린 한 농민, 어리신 주석님을 대견하게 여기시며 극진히 환대해드린 강계객주집의 주인과 할머니, 서선려관 주인…

위해주고 아낌없이 도와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우리 민족은 선량하고 도덕적인 민족이라는것을 뜨겁게 느끼시였고 왜색이 짙어가는 거리의 풍경을 보시며 조선을 알아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던 아버님의 참뜻을 다시금 되새보시였다.

팔도구를 떠나신 때로부터 열나흘만인 1923년 3월 29일 해질무렵 마침내 만경대고향집 뜨락에 들어서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할아버님, 할머님과의 뜻깊은 상봉을 하시였다.

그때를 회고하여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회고록《세기와 더불어》에 《나에게 있어서는 그 천리길이 조국을 알게 하고 우리 인민을 알게 해준 하나의 큰 학교였다.》라고 쓰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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