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천리길과 더불어 빛나는 절세위인의 애국의지

Date: 16/03/2019 | Source: Ryugyong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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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는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큰뜻을 품으시고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하신 영상과 그 자욱자욱이 소중히 새겨져있다.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원쑤에 대한 끝없는 증오심을 안으시고 순간의 주저나 동요도 없이 멀고 험한 천리길을 이어나가신 위대한 수령님,

류례없이 암담하던 민족수난의 그 세월 위대한 수령님께서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을 아로새기신 그 길이 있어 성스러운 조선혁명의 력사가 있고 승리와 영광으로 수놓아진 조국의 오늘이 있는것 아니랴.

하기에 세월이 흐른 오늘도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그날의 불멸의 자욱을 뜨겁게 되새겨보며 절세위인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으로 가슴끓이고있는것이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혁명위업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을 지니고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혁명의 승리를 이룩해오신 위대한 혁명가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의 높은 뜻을 받드시고 배움의 천리길에 오르신 그날은 지금으로부터 96년전인 주체12(1923)년 3월 16일이였다.

사나운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는 이른아침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모님과 동무들의 바래움을 받으시며 압록강을 건느시였다.

이제 떠나면 몇해를 지나 다시 만나게 될지, 떠나시자니 서운한 생각이 없지 않으시였지만 빼앗긴 조국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나라의 말과 글, 력사와 지리를 깊이 배움으로써 제 나라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고 하신 김형직선생님의 뜻을 되새기시며 배움의 천리길의 첫걸음을 힘차게 내디디시였다.

꽁꽁 얼어붙은 대지를 밟으시며 한걸음 또 한걸음 조국땅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는 위대한 수령님.

당시로 말하면 다른 나라에 가야 개명도 하고 학문도 닦을수 있다고 생각하는것이 하나의 시대적풍조로 되여있어 조선에서 돈냥이나 있는 집 자식들은 저마다 보따리를 싸들고 외국류학의 길에 오르던 때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에서 태여난 남아라면 마땅히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조선에 나가서 우리 나라가 왜 망했는가 하는것만 똑똑히 알아도 그것은 큰 소득이라고, 고향에 나가서 우리 인민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있는가 하는걸 체험해보라고 하신 김형직선생님의 뜻을 받드시고 외국으로가 아니라 조국으로 향하시였다.

허나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그 길은 너무도 멀고 간고한 로정이였다.

가야 할 천리중 500리이상은 무인지경이나 다름없는 험산준령이였고 북방의 수림들에서는 대낮에도 맹수들이 어슬렁거렸다.

하루종일 넘고넘어도 끝이 없어 한다하는 장정들도 오르기를 주저하는 오가산의 험준한 고개와 깊은 골짜기들, 그것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힘겨운 길이였다.

먼길을 떠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행장 또한 너무나도 간소하였다. 학생복차림에 강반석어머님께서 밤새워 지으신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짐이란 고작 몇권의 학습장과 옷 한벌이 들어있는 자그마한 보꾸레미가 전부였으며 려비조차도 그리 넉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어떤 험산준령과 세찬 눈보라도 결코 위대한 수령님의 발걸음을 멈추거나 더디게 하지 못하였다.

조국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김형직선생님의 간곡한 당부가 우리 수령님의 발걸음을 순간도 지체할수 없게 하였던것이다.

한시바삐 안기고싶은 조국땅이였고 가슴속에 새겨두고싶으신 산천이였건만 우리 수령님을 맞아준 조국의 현실은 너무나도 비참하였다.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신음하는 겨레의 모습과 살길 찾아 떠나는 류랑민들의 끊임없는 행렬, 인민들의 원한에 찬 목소리를 들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마음은 참으로 쓰리고 아프시였다.

나라없고 주권이 없는 민족의 슬픔이 피가 되고 눈물이 되여 흐르는 조국땅,

위대한 수령님의 가슴속에서는 조국강산을 비참한 인간생지옥으로 만든 날강도 일제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이 세차게 끓어올랐다.

조국의 참담한 현실을 직접 체험하실수록 나라를 구원하자면 신음하는 조국을 보고 체험하여야 하며 조국땅이상 더 좋은 학교는 없다고 하신 김형직선생님의 뜻이 더더욱 심장깊이 새겨지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발걸음을 재촉하시였다.

그러던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 객주집에 들리시였을 때였다.

그날 객주집에는 손님이 몇명 있었는데 그들속에는 간도로 살길을 찾아간다는 길손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간도로 이사간다는 손님에게 어디서 살다 떠나오는 길인가고 물으시였다.

그는 전라도 호남벌에서 살다가 오는 길인데 왜놈들에게 땅을 다 떼우고 간도에 땅도 많고 살기도 좋다고 해서 식솔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고 자기의 처지를 이야기하였다.

방바닥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는 그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도 그곳에서 살다가 나오는 길이라고 하시며 간도형편을 이야기해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일제놈들이 산간벽촌에까지 기여들어 제세상처럼 날뛰며 주인행세를 하니 정말 통분할 일이라고 격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밤이 깊어 모두 잠자리에 들었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시였다. 팔도구를 떠나 조국으로 나오시는 과정에 목격하신 일들과 처절한 우리 인민들의 모습이 눈앞에서 가셔지지 않으시였다.

다음날 아침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래워주시고나서 집주인에게 이 좋은 고향산천을 버리고 저렇게 살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서글퍼진다고 하시면서 이제 조선사람들도 왜놈들이 없는 세상에서 잘살 때가 꼭 올것이니 그날까지 조선사람의 량심을 지켜가며 대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안광에는 빼앗긴 조국을 기어이 되찾고야말 비장한 각오가 비껴있었다.

참으로 배움의 천리길은 우리 수령님께 있어서 수난에 찬 현실속에서 조국과 민족에 대하여 더욱 깊이 알게 하고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을 되찾아야 한다는 큰뜻을 품게 한 성스러운 혁명의 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팔도구를 떠나신지 열나흘만인 주체12(1923)년 3월 29일 만경대에 도착하시였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멀고먼 천리길을 오셨다는것을 아신 할머님께서는 너무도 놀라우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손을 잡으시고 너는 백두산에 걸터앉아 동해바다에 발을 씻자고 하겠다라고 감탄을 금치 못하시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창덕학교에 입학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 도탄속에서 신음하는 동포들을 구원하고야말 결심과 의지를 굳게 다지시며 일제에게 짓밟힌 조국땅에 해방의 려명을 안아오실 원대한 뜻을 키워나가시였다. 조국에서 보내신 기간은 두해밖에 안되였지만 그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이 어떤 인민인가를 더 잘 알게 되시였으며 이런 인민을 잘 조직동원한다면 얼마든지 나라를 찾을수 있다는 진리를 가다듬게 되시였다.

그 위대한 진리로부터 출발하시여 우리 수령님께서는 민족해방혁명으로부터 사회주의건설에 이르는 장구한 혁명의 길을 인민대중을 믿고 인민의 힘을 발동하면 백전백승한다는 혁명적신념으로 헤쳐오시였다.

피어린 항일대전의 나날과 준엄한 전화의 시련, 복잡다단한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투쟁…

우리 혁명의 년대마다에서 이룩된 자랑찬 승리들과 더불어 혁명의 천리길에 아로새겨진 절세위인의 애국의지는 년대와 세대를 이어가며 찬연히 빛을 뿌리고있다.

우리 인민모두가 절대불변의 신념으로 꿋꿋이 이어가는 혁명의 길,

그 길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혁명의 천리길의 련속이며 천만년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걸어갈 주체혁명의 길이다.

위대한 수령님들을 따라 걸어온 성스러운 혁명의 길을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를 받들어 끝까지 가고가리라, 이것이 우리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이 다지는 신념의 맹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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