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와 세 딸 》

Date: 15/05/2019 | Source: Tongil Voice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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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정씨와 세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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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정가성을 가진 부자가 살고있었다. 그는 뜻이 컸고 문장이 아주 뛰여났으며 자질구레한 례의범절에 대해서는 도무지 마음을 쓰지 않았다. 50살이 지나 안해를 잃고 그는 탄식하며 말했다.

《내겐 세 딸에다가 또 부모잃은 조카애까지 딸려있고 어느덧 내 나이도 쉰살이 넘었으니 백발을 날리며 재취해가지고 남들의 웃음거리가 될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첩을 데리고 살면서 집안을 소란스럽게 할수도 없으니 조카애가 다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집안일을 맡기는것이 상책이겠다.》

세 딸은 아버지의 속내를 짐작하고 서로 쑥덕공론을 벌렸다.

《만일 인이 없다면 우리 집의 많은 재산은 자연히 우리에게 차례질텐데 공연히 그에게 맡기겠다고 하면서 우리들은 셈에도 쳐주지 않으니 원통하기 짝이 없구나. 그러니 우리가 어찌 인을 쫓아내지 않을수 있겠느냐?》

인이란 바로 조카의 아명이였다. 이때부터 세 딸은 저저마다 야금야금 참소질을 하였다. 그리하여 조카를 대하는 정씨의 태도는 그전보다 살뜰하지 못하게 되였다.

인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내 불행하게도 일찌기 부모님들을 여의고 삼촌에게 의지하여 살아왔으니 아버지는 없지만 삼촌이 아버지인셈이다. 삼촌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그전같지 않은것은 여러 누이들의 참소질때문이다. 누이들이 참소질을 하는것은 집안재산이 내게 차례질가봐 겁이 나 그러는것이다. 내 만일 비굴하게 이 집을 떠나지 않고 이 께름한 집안에서 살다가는 필경 아무때건 뜻밖의 변을 당하고야말것이다. 재산이 아무리 귀하다 한들 어찌 목숨에다 비기랴.  내 조심히 이곳을 피해 동정을 살펴보리라.)

그리고는 삼촌에게 알리지도 않고 몸을 빼여 멀리로 도망쳐 버리고말았다. 정씨는 세 딸의 입빠른 말에 넘어가 인이 집을 나간 까닭을 묻지 않았다.

그는 혼자 생각을 더듬었다. (인이 이미 달아나버려 내 재산을 맡길 사람이 없어졌으니 딸들에게 나누어주고 그 애들에게 의지하여 살다 죽는수밖에 별도리가 없겠다.)

정씨는 세 딸을 시집보내고 집과 밭을 모두 나누어주고 우선 맏딸에게 얹혀살았다. 몇달이 지나자 맏딸이 조용히 말하는것이였다.

《아버님이 여기서 함께 사시는게 싫어서가 아니라 우로는 시부모님들이 계시고 아래로는 시누이들이 있으니 저 역시 자유롭지 못해 참말이지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니 얼마동안 동생네 집에 가계시는게 어떠합니까?》

정씨는 딸의 속심을 제꺽 알아차리고 말했다.

《네 말이 정 그렇다면 나는 그만 떠나가련다.》

그리하여 정씨는 둘째딸에게 옮겨가 살게 되였다. 그러나 얼마 안되여 둘째딸도 맏딸과 마찬가지로 판에 박은 소리를 하는것이였다.

이렇게 정씨는 여기저기 왔다갔다하느라고 옷이 람루해지고 입에 풀칠하기도 또한 조련치 않다나니 마음속에 울분만이 끓어올랐다.

《내 세상일을 소홀히 대하던탓에 이렇듯 의지할곳조차 없이 떠돌아다니며 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으니 차라리 이 목숨을 끊어버리는게 낫겠다.》

정씨는 남몰래 독약을 가지고 창의문으로 걸어나왔다.

그런데 마침 거기에 있던 나무군 한사람이 정씨에게 절을 하면서 안부를 묻는것이였다. 그는 바로 조카 인이였다.

정씨는 놀라서 물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서 이런 고생을 하며 산단 말이냐?》

그러자 인은 흐느끼며 대답하였다.

《제 비록 아무리 못났기로서니 저를 친자식이나 다름없이 길러준 삼촌의 은혜를 모르겠습니까? 그때 제가 집을 떠난것은 누이들의 모함을 입을가 두려웠기때문이였습니다.》

인은 누이들이 자기를 모함하던 일들을 이야기하고나서 말을 이었다.

《저는 얼마전 재상댁 하녀에게 장가들어 그 집 행랑채에 거처를 정하고 땔나무를 해다 팔아 살고있습니다. 안해의 사람됨이 무던하고 공손해서 몸은 비록 고달플지라도 마음만은 편합니다.》

정씨는 그 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네가 집을 나간 때부터 나는 너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정씨는 분김에 자살하려던 사연을 털어놓았다.

조카는 슬피 울며 정씨를 잡아끌어 행랑채로 안내하더니 안해더러 인사를 시키고 거기에 삼촌이 있게 하였다.

조카는 땔나무를 해다 팔고 며느리는 때식을 끓였다. 몇해가 지나갔으나 그들은 조금도 그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정씨가 그 집에 거처한지가 벌써 퍼그나 오랜지라 자연히 재상과 친교를 맺고 그 집 일을 맡아보게 되였다. 그런지 얼마 안되여 재상은 평안감사로 나가게 되였고 정씨에게 여러가지 세간일을 맡아보게 하였다. 정씨는 온갖 힘을 다하여 감사를 적극 뒤받침해주면서 받은 봉급은 한푼두푼 모아두었다가 조카에게 보내주군 하였다.

그러면 조카는 단 한푼도 쓰지 않고 장부에 기록해서 간수해두고는 정씨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때 세 딸들은 제 아버지가 평양감영에 있다는것을 알고 편지를 부쳐 토산물을 구해달라고 청했다. 정씨는 웃기만 하고 회답하지 않았다.

정씨가 서울로 돌아오는 날 딸들은 푸짐한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동구밖에까지 마중나왔다. 조카도 삼촌을 맞이하기 위해 탁주와 닭알 한알을 겨우 마련해가지고 패랭이에 허줄한 옷차림으로 나오다가 누이들과 만나게 되였다.

누이들은 그를 보자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넌 무엇때문에 멋없이 집을 뛰쳐나갔다가 이런 꼬락서닐 해가지고 렴치없이 기신기신 찾아오는거냐? 우릴 망신시키지 말고 미리감치 여기서 썩 사라져라.》

조금 지나서 정씨가 도착하였다.

세 딸은 10년후에야 제 아버지를 마중하며 그간 석별의 정을 이야기하고 이번 길에 수고많았겠다고 그를 위로하며 가지고 나온 술과 음식을 권하는것이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속이 편치 않다는 핑게를 대고 음식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던 참에 조카가 다가와 인사하자 정씨가 《네가 가지고 온게 무엇이냐?》라고 하더니 그가 가지고 온 탁주를 꺼내 마시였다.

딸들은 샐쭉하였다.

《아버님은 어째서 맑은 술을 마시지 않고 탁주를 마시오이까?》

《어쩐지 탁주를 마시고싶구나.》

이어 정씨는 심부름군을 시켜 세 딸에게 농짝을 하나씩 나누어주도록 하였다.

《내 너희들을 위해서 토산물을 구해 이 속에다 가득가득 채워놓았다. 그러니 너희들은 친척들에게 자랑하며 쓰도록 하여라.》

딸들이 그것을 받아가지고 돌아와 열어보니 가득 담긴것이란 온통 쌀겨뿐이였다. 그우에 한장의 종이가 놓여있었다. 자식을 애지중지 기르던 옛일을 자세히 쓰고 마지막에는 《너희들은 개, 돼지나 다름없는것들이니 이 쌀겨를 먹어야 할것이로다.》라고 씌여있었다.

그후 세 딸이 비록 전날의 잘못을 깊이 사죄하였으나 정씨는 더욱 노기가 올라 펄펄 뛰며 끝내 상종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마침내 조카와 그의 안해를 속량시키고 다시 가산을 장만하여 살다가 생을 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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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을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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