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21일 전두환의 광주방문, 낱낱이 밝혀야

Date: 17/05/2019 | Source: Arirang Meari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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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조선인터네트신문 《민중의 소리》 2019년 5월 14일부에 실린 글 -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처음 발포한 5월 21일 전두환이 광주를 방문해 회의를 주재했다는 공개증언이 나왔다. 증언자는 당시 미륙군 501정보려단 방첩부대 요원이였던 김용장과 당시 계엄군의 지휘소역할을 했던 505보안부대 수사관 허장환이다.

이들에 따르면 5월 21일 낮 전두환이 광주의 K57비행단장실에서 특전사령관 정호용, 505보안부대장과 리재우 등과 회의를 열었고 회의직후 광주 금남로의 전남도청앞에서 계엄군이 집단발포해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전두환은 그간 학살이 이뤄질 당시 광주를 방문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그의 광주방문이 여전히 흑막에 가려진 발포명령권자규명의 열쇠가 될수 있기때문이다. 당시 계엄사령관이자 보안사령관으로 신군부의 수괴인 전두환이 광주에 있었다면 그가 발포사실을 몰랐을수 없다. 아니, 전두환 말고는 누구도 발포명령을 내릴수 없었다. 정호용 등 수족들과의 회의직후 발포가 이뤄졌다는 증언도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당시 헬기운항기록 등을 철저히 조사해 전두환의 행적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

이번 증언은 다른 중요내용도 많다. 당시 도청앞에서 계엄군이 《앉아 쏴 자세》로 시민을 겨냥해 사격했다는 증언은 자위차원의 발포였다는 전두환일당의 거짓말을 반박한것이다. 허씨는 《발포명령이 아니라 사살명령이였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의 위성감시 등이 북과 광주에 집중돼 《북의 군 600명침투》는 가능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편의대》라는 이름으로 젊은 군인들을 사복을 입혀 시민들속에 침투시켰다고 폭로했다. 《편의대》의 임무는 방화, 총격, 장갑차탈취 등을 직접 벌리거나 유도하는것이며 각종 류언비어확산도 수행했다는 증언이다.

아울러 신군부가 5.18 당시 사망자들을 가매장했다가 발굴해 《광주<국군>통합병원》에서 소각했고 일부는 바다에 수장했을것이라는 증언도 사실가능성이 높아보여 진상조사를 통한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5.18의 끝나지 않은 진실규명은 누구도 가로막을수 없다. 《자유한국당》은 진상규명위원에 무자격자를 추천해 진실규명을 지체시키며 방해하고있다. 언제까지 군부쿠데타, 시민학살을 옹호할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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