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같은 생애

Date: 12/06/2019 | Source: Ryugyong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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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2일, 이 날은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철주동지께서 탄생하신 날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력사는 자기 인민과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한 사람들의 업적은 영원히 남아있으며 그들의 위훈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난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오래 산다고 하여 값있고 빛나는것이 아니다.

순간을 살아도 조국과 혁명앞에 불멸의 자욱을 남긴 생이 가장 값높은 삶으로 빛나는것이다.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철주동지의 생애는 비록 짧았으나 수령과 혁명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헌신성, 백절불굴의 투쟁정신과 강의한 의지, 혁명적락관주의로 충만된 빛나는 한생이였다.

김철주동지께서는 주체5(1916)년 6월 12일 만경대(당시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에서 김형직선생님과 강반석녀사의 둘째아드님으로 탄생하시였다.

김철주동지께서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뜨거운 사랑속에서 만경대가문의 숭고한 애국, 애족, 애민의 넋을 그대로 이어받으시며 성장하시였다.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험난한 투쟁의 가시덤불길을 헤쳐나가시는 부모님을 따라 일찌기 고향 만경대를 떠나시여 강동, 림강, 팔도구, 무송 등지에서 파란곡절에 찬 어린시절을 보내시면서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설음과 불행을 뼈저리게 체험하시였고 일제에 대한 끝없는 증오와 항거의 정신으로 가슴 불태우신 김철주동지이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세심한 지도와 극진한 보살피심은 김철주동지께 있어서 혁명의 진리를 체득하고 불굴의 투쟁정신과 강의한 의지, 고상한 풍모를 소유한 참다운 혁명가로 성장하게 한 자양분이였고 원동력이였다.

김철주동지는 주체혁명위업이 개척되던 첫시기에 어버이주석님을 조선혁명을 이끌어나갈 령도자로 받들고 따르시였으며 그이께서 결성하신 우리 나라에서의 첫 소년혁명조직인 새날소년동맹의 핵심성원이 되시여 혁명투쟁의 길에 나서시였다.

군중계몽을 위한 연예선전활동과 《새날》신문의 발간, 배포사업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사업을 책임적으로 맡아 수행하신 김철주동지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혁명적영향을 받으며 참된 혁명가로 자라나게 되였다.

지금도 어버이주석님과 헤여지시던 김철주동지의 마지막모습이 추억깊이 되새겨진다.

어머님이신 강반석녀사의 령전에서 몸이 찢겨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손에 무장을 들고 부모님의 생전의 뜻을 기어이 실현할 비장한 맹세를 다지신 김철주동지께서는 어버이주석님을 찾아 멀리 량강구에까지 가시였다.

하지만 어버이주석님께서는 무장투쟁을 강화발전시키자면 공청대오를 튼튼히 꾸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김철주동지께 공청사업을 본때있게 내밀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김철주동지께서는 어버이주석님과 가슴아픈 석별의 정을 나누게 되시였다.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애쓰시는 어버이주석님께로 다가가시여 그이의 손을 조용히 잡았다 놓으신 김철주동지께서는 소사하의 토기점골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음산하고 처량한 가을날 량강구의 이름없는 못가에서 쓸쓸한 작별의 인사를 나누신 김철주동지의 모습이 우리 주석님께 있어서 사랑하는 동생의 마지막모습으로 될줄 그 어이 알았으랴.

후날 어버이주석님께서는 김철주동지의 한생에 대하여 만일 그때 내가 철주의 청을 들어주었더라면 동생은 스무살도 채 되지못한 나이에 일찌기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실로 불같이 살다가 불같이 가버린 인생이였다고 감회깊이 추억하시였다.

불같은 생애, 바로 여기에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철주동지의 한생이 집약되여있다.

김철주동지의 혁명생애는 어버이주석님의 령도를 충정으로 받드는 실천투쟁속에서 더욱 별처럼 빛을 뿌리였다.

김철주동지께서는 어버이주석님의 의도대로 공청사업을 줄기차게 벌려나가시였으며 총을 잡고 일제놈들을 쳐부시고싶은 자신의 마음도 함께 담아 많은 공청원들을 키워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시키시였다.

공청사업을 벌리시던 나날에 있은 일이다.

그이께서 키워내신 15명의 공청원들이 유격대에 입대하게 되였다.

그런데 무장이 없는것이 문제였다.

김철주동지께서는 유격대로 가는 공청원들이 자체로 무장을 해결하도록 하기 위하여 양초구에 주둔하고있는 위만군의 무장을 해제할 대담한 결단을 내리시였다.

권총 몇자루를 가지고 보총으로 무장한 30여명의 위만군을 무장해제시킨다는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였다.

김철주동지의 치밀하고도 대담한 계획과 유능한 정찰, 불의적이고도 결단성있는 전투행동으로 하여 습격전투는 승리적으로 끝났으며 공청원들은 로획한 총을 메고 보무당당히 유격대로 떠나게 되였다.

김철주동지의 투철한 수령결사옹위정신은 어버이주석님께서 12월명월구회의에서 내놓으신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중국인반일부대들과의 사업을 강화하는데서 높이 발휘되였다.

죽음도 각오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이여서 거듭 만류하는 동지들에게 김철주동지께서는 지금은 위험과 곤난만을 운운할 때가아니라고 하시며 중국인반일부대에 대담하게 뚫고들어가 림기응변의 지략으로 끝끝내 그들을 반일의 길로 되돌려세우시였다.

조선사람이라면 덮어놓고 적대시하던 반일부대두령이였던 서규오는 후날 공산당에 입당하여 어버이주석님앞에 나서게 되였다.

그는 어버이주석님을 만나뵙는 자리에서 김철주동지가 아니였더라면 자기는 오늘과 같은 날을 맞이하지 못했을것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다.

일제침략자들을 격멸소탕하는 대전자, 푸르허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들에서도 김철주동지께서는 무비의 용감성과 희생성을 발휘하시였다.

김철주동지께서는 총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전투를 지휘하기도 하시고 적탄이 비발치는 돌격전의 앞장에 서시여 막아서는 적병들을 쓸어눕히며 남먼저 적진에 뛰여들기도 하시였다.

전투가 승리적으로 결속될 때마다 반일부대 지휘관들과 병사들속에서는 《김선생께서는 참으로 용감하시다.》,《항일유격대는 무적의 부대이다.》라는 커다란 반향이 일어났다.

혁명적신념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정신으로 심장을 불태우시던 김철주동지께서는 주체24(1935)년 6월 14일 처창즈근방에서 불의에 맞다든 적들과의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시였다.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철주동지께서는 길지 않은 자신의 한생을 통하여 가장 숭고한 혁명적수령관도, 조국과 민족에 대한 가장 열렬한 사랑도, 혁명가의 최대의 열정도 총대에 있다는것을 귀중한 혁명의 진리로 력사에 깊이 아로새기시였다.

세월은 멀리 흘렀어도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철주동지께서 조국해방위업에 쌓으신 불멸의 공헌을 우리 인민은 영원히 잊지 못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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