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5, 2024
KCNA Ryomyong

비가 오나 눈이 오나(제23회)

Date: 14/11/2019 | Source: Ryomyong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중편수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제23회)

김흥곤

6. 시련을 이겨내며

(1)

그러나 투쟁의 길에는 시련과 고난의 언덕이 첩첩히 막아서고있었다.

1943년말에 이르러 일제의 패망은 확정적인것으로 되여갔다. 중국전선에서 왜놈들은 점점 헤여날수 없는 곤경에 빠져들었고 모험적인 태평양전쟁에서도 전반적으로 패전을 거듭하고있었으며 일제의 동맹국들인 파쑈도이췰란드가 쏘련군대의 드센 반격으로 심대한 타격을 받고 허우적거리는데다가 이딸리아도 1943년 9월 무조건항복을 선포하였다.

전반적인 국제정세는 일제의 패망이 시간문제라는것을 시사해주고있었다. 그럴수록 일제의 발악은 더욱 우심해졌다. 놈들은 조선청년들에 대한 징병제를 실시하고 제1기징병모집을 위한 폭압조치들을 취하는것과 함께 대학, 전문학교의 조선인학생들도 학도병으로 끌어내기 위한 강압적인 조치를 실시하였다.

나도 제1기 징병대상으로 되여 징병통지서를 받게 되였다. 절대로 일제의 총알받이, 대포밥이 되여 개죽음을 당할수는 없었다.

생각을 깊이 한 끝에 나는 여러가지 방책을 세웠다.

우선 그동안 고등문관시험준비에 몰두한탓에 신경쇠약증이 심해져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는 구실로 광주의 도립병원이나 경성의 큰 병원에 입원했다가 탈출하여 깊은 산중에 피신하는것이고 다음은 일단 병을 구실로 광주를 떠나 경성으로 가서는 징병을 위한 신체검사를 앞두고 절식과 과도한 신체단련으로 스스로 몸을 혹사하여 불합격을 받은 후 몸을 회복하면서 일제의 패망을 기다리는것이였다.

이러한 방책을 토의하고 조언을 받기 위하여 나는 백학기와 함께 장성으로 가서 송종근선생을 만났다.

오래간만에 다시 만난 나를 보자 송선생은 저으기 기뻐하며 그동안 몰라보게 성장했다고 무척 기뻐하였다.

이미 병업삼촌과 만난 정형을 알려주고 조국광복회의 조직성원으로 되였음을 알려준 뒤라 그는 나에게 이전처럼 하대를 하지 않고 동지로서 대해주었다.

《자네가 지난해 백남규선생의 도움으로 냈던 신경쇠약진단서를 구실로 병이 더 도지였다고 구실을 대겠다는 방책이 그중 나을것 같네. 그런데 문제는 일단 징병을 기피한 다음에 어디에 은신하겠는가 하는것일세. 덮어놓고 태백산이나 소백산줄기의 산중에 피신하겠다고 할것이 아니라 의거할 거점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 처지에서는 그것이 좀 무리할것 같구만.

두번째 방책에서는 경성에 가서 과도한 단련과 절식으로 몸을 혹사시키겠다는데 왜놈형사들이 욱실거리는 속에서 어디에서 그런 일을 해낼수 있겠는가 하는게 문제일세. 내 생각에는 백남규선생만이 그 일을 도울수 있을것 같으니 그와 토론하고 도움을 받는것이 좋을것 같구만.

자네가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조국해방을 위한 투쟁을 본격적으로 벌려나가려면 반드시 이번 징병기피투쟁에서 성공해야 하네.》

그해 12월 중순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나는 왜놈교장에게 징병에서 합격되려면 아무래도 광주나 경성의 큰 병원에 가서 신경쇠약증을 치료해야 할것 같다는 구실을 대고 승낙을 받았다.

그날밤 나는 집안식구들과 마주앉아 내가 세운 징병기피계획에 대하여 알려주었다.

당시 우리 집식구들은 모두 도덕리로 이사와서 교원사택에서 살고있었다. 내가 교원생활을 그만두게 되면 집을 내놓아야 하고 식구들의 생활도 어려워질수 있었다.

《제가 징병을 기피하고 교원노릇을 그만두게 되면 이 집도 내놓아야 할테니 모두 라주군 병동면 지죽리에 있는 고모한테 가서 그곳 남새밭 농막집으로 이사하십시오. 농막에서 살면서 남새밭도 가꾸고 부식물을 자체로 해결하면 그동안 제가 저축한 돈을 가지고 한 3년동안은 살아갈수 있을것입니다. 만약 제가 징병에서 빠지게 되더라도 경성이나 다른곳에서 투쟁을 진행할 계획이므로 당분간은 그곳으로 이사간 후에도 찾아뵈올것 같지 못합니다. 하지만 왜놈들이 반드시 멸망할것이므로 우리가 다시 만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고생스럽더라도 힘을 내서 살아갑시다.》

말을 마친 나는 식구들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둘러보았다. 늙으신 조부모님들과 어머니의 얼굴에는 괴로움과 슬픔의 빛이 어려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긴 담배대만 빨고있던 할아버지는 놋재털이에 소리나게 담배재를 털고나서 근엄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하였다.

《네가 사내대장부답게 결심을 잘했다. 이 나라의 사나이라면 마땅히 나라위해 몸바쳐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 김일성장군님을 받들어 독립을 이룩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거라!》

그러자 할머니는 《왜놈들이 어서 망해야지 네가 집으로 돌아오겠구나. 아무쪼록 집안걱정일랑은 하지 말고 꼭 뜻을 성취하거라.》하며 옷고름으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어머니는 강직한 어조로 《일단 집을 나선바에는 잔근심에 발목잡히지 말고 네가 정한 길을 곧바로 가거라.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량심과 지조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것이였다. 가족들의 믿음과 기대, 고무격려가 크나큰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을 남겨두고 떠나자니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앞일이 막막하여 가슴이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그날밤 나는 잠들지 못하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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