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 관찰사로 부임되여온 정원용(1783년－1873년)은 첫 사업으로 기생들의 청탁을 취급하게 되였다.

평양부의 기생 죽엽이 뜻밖에도 임진년의 의로운 기생인 계월향의 애국적소행을 나라에서 인정하고 그의 공로를 새겨넣은 비석을 세워주길 바란다는 청을 올린것이다.

정원용은 대뜸 욕설부터 앞세우며 단마디로 잘라버렸다.

글쎄 하찮은 기생의 비를 세워달라니 불쾌하기 그지없었던것이다.

쌓여진 일감으로 그럭저럭 바쁜 나날을 보내던 어느해 여름 정원용에게 선비들 여러명이 찾아와 청을 올렸다.

《우리들은 평양에 태를 묻고 살아가는 선비들로서 이 땅에 깃든 유구한 력사에 대하여 잘 알고있나이다. 예로부터 평양성에는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용감히 싸운 충신들이 많습니다. 그들속에는 임진년에 왜적을 물리치는 싸움에서 한몸을 바친 의로운 기생 계월향이도 있소이다.》

《계월향?!》

이름을 되불러보는 정원용의 머리속에 문득 부임한 날에 기생의 청을 사연도 묻지 않고 매정하게 잘라버리던 일이 떠올랐다.

《그래, 그대들도 계월향의 비를 세워달라는 청원을 하자는것이요?》

《그렇소이다.》

《한갖 천한 기생이 무슨 큰 공을 세웠다고 비를 세워주자고 하오?》

사또의 말에 평양부의 이름있는 한 선비가 절절히 아뢰였다.

《계월향의 공적에 대하여서는 〈평양속지〉를 보면 자세히 알수 있소이다. 그리고 감사어른께서 종로네거리나 월향이 나서자란 마을 등 부안의 그 어디에서 누구든지 데려다 물어보아도 중 념불외우듯 이야기하는 계월향의 의로운 소행을 들을수 있을것이오이다. 먼저번 사또께서 우리 선비들과 기생들의 청을 듣고서 기생동네에 집을 세내여 비단에 월향의 화상을 그려놓고 가을에 제를 지내게 하여주었으나 그것은 월향의 공적을 오래도록 전하는데서는 부족점이 있다고 우리 평양사람들은 누구나 한스럽게 여기고있나이다.》

월향의 의로운 소행을 길이길이 전해가려는 그들의 고결한 마음에 깊이 끌려들어가면서도 정원용은 머리속에 완고하게 틀고앉은 기생이라는 천한 신분에 대해서는 도저히 용납할수가 없었다.

월향이는 도대체 어떤 공적을 남긴 녀인이길래 평양성사람들의 추억속에 오래동안 남아있는것이냐?

그는 《평양속지》에서 임진년의 사실을 기록한 부분을 읽어내려갔다.

…계월향은 왜놈들이 평양성안에 들어왔을 때 미처 피난하지 못하여 적장놈에게 잡힌 몸이 되였으나 자기의 지혜와 기지를 발휘하여 김응서를 오라버니로 가장시켜 적진속에 들어오게 한 다음 적장을 만취시켜놓고 김응서로 하여금 목을 베게 하였다. 월향은 왜적들이 쫓아오자 김응서가 빨리 피신할수 있게 방어사의 칼을 당겨 웃으며 자결하였다.

계월향의 의로운 애국적소행은 평양사람들에게 투쟁의 불씨를 심어주었다.

…

《평양속지》를 덮고난 정원용은 가슴을 치는 충격을 금할수 없었다.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조정관리들도 제 한몸을 먼저 생각하며 왜적들을 피해 달아나고있을 때 한갖 천한 신분을 가진 계월향이 나라를 위해 자기의 꽃다운 생을 서슴없이 바치였으니 사람들이 오늘도 그를 추억하고있는것이 아닌가.

그는 즉시에 평양부 서윤과 관속들을 모아놓고 계월향의 공적을 새겨넣은 비를 세워줄뿐아니라 사당도 세울것을 의논하고 조정에 장계를 올리였다.

계월향의 사당과 비를 세운다는 소식을 들은 성안의 사람들과 기생들은 모두가 떨쳐나서 터를 닦고 비돌을 다듬는 일을 성의껏 도와나섰다.

정원용은 비돌이 완성되자 직접 비문을 지었다.

그리하여 1835년 6월 을밀대의 남쪽 따스한 곳에 《의렬사》사당이 완성되였으며 그 앞뜰에 계월향의 애국적공로를 담은 775자로 된 비석이 세워졌다. 그때가 바로 월향이 세상을 떠난지 243년이 되는 해였다.

이렇게 계월향의 비는 평양사람들의 반침략애국심의 발현으로 세워지게 되였으며 오늘도 애국심을 심어주는 국보적인 유적유물로서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는데 이바지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