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8, 2024
KCNA Ryomyong

비가 오나 눈이 오나(제34회)

Date: 21/01/2020 | Source: Ryomyong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중편수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제34회)

김흥곤

8. 준엄한 싸움

(4)

랭기가 도는 차칸에서 담요로 온몸을 감싼 나는 벽에 기대여앉았다. 전등조차도 없어서 차칸안은 어둑컴컴하였다. 그때는 철도사정이 좀 나아져서 종전에는 3일이 걸리던것을 하루반만에는 안양역에 도착하였다.

양지리의 백남규선생 집에 들어서니 리계남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그로부터 선생의 집형편에 대하여 들었다. 백남규선생은 아주머니와 막내아들을 데리고 동덕녀자중학교 사택으로 옮겨갔으며 이곳에는 백룡기의 가족이 살고있는데 지금 서울장안에서는 쌀값이 오르는데다가 그나마 쌀도 없어서 야단이라는것이였다.

마침 내가 지고간 쌀 한배낭이 있어 나는 그중 절반을 덜어주었다.

저녁에 백룡기가 돌아오자 무척 반가와하며 당장 서울의 아버지한테로 가자고 하는것이였다.

그날밤중으로 서울에 올라간 나는 백남규선생의 부자와 마주앉아 그동안 서울에서 벌어진 정치정세의 변화에 대하여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백선생의 이야기를 통하여 나는 박헌영의 꾀임에 넘어가 미군진주를 환영하는 립장에 섰던 려운형을 비롯한 《조선인민공화국》과 공산당의 많은 인물들이 지금에 와서는 자기들이 정책적착오를 범했다는것을 인정하고 자책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 소식은 광주에서 그들의 《로선》을 반대한것으로 하여 테로까지 당했던 나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었다.

그들속에는 해방전 나와 직접적인 련계를 가지고 지도해주던 강병창, 리관술도 있었으므로 나는 그들과 정치적견해가 다른것으로 하여 은근히 걱정하고있었던것이였다. 이제는 마음놓고 그들을 만나 앞으로의 투쟁대책에 대하여 의논하고 다시 손잡고 일할수 있게 되였다.

그런데 백선생의 집에서도 역시 식량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생은 나더러 자기 집에서 지내면서 활동하라고 하였으나 당장 밥을 지을 쌀조차 없는 형편이였다.

내가 내놓은 반배낭의 쌀이 있었기에 다음날 아침을 겨우 준비할수 있었다.

당장 식량문제부터 해결해야 하겠다고 결심한 나는 다음날 아침 백선생과 함께 서울부근에서 쌀고장으로 이름난 평택으로 갔다.

그곳에는 동덕녀자중학교부속 동덕학원의 소유인 여러정보의 논이 있었던것이였다.

소유지를 관리하는 마름을 만난 우리는 가지고갔던 돈을 다 털어서 다음해까지 먹을수 있는 량의 쌀을 살수 있었다.

당장 먹을 쌀부터 각각 배낭과 가방에 채워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니 식량걱정으로 수심에 잠겨있던 정현진아주머니가 제일 반가와하였다.

이렇게 생활거점을 마련해놓은 나는 해방후 경성제국대학의 법문학부장 겸 총장격으로 나서서 각 분야의 학자들을 망라한 조선학술원을 조직하고 원장으로 활동하고있는 백남운선생부터 찾아갔다.

혜화동의 집에서 나와 만난 선생의 모습은 이전과 달리 한결 젊어지고 씩씩해보였다.

그동안 광주에서 활동한 정형과 송종근선생을 비롯한 동지들의 소식을 듣고난 그는 나에게 자기의 서기로 일하면서 방조해줄것을 부탁하였다. 그러자면 그동안 내가 리관술, 강병창의 조직적지도를 받아왔으므로 그들에게 보고하고 결론을 받아야 할것이라고 하면서 그러되 박헌영일당이 알지 못하게 할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며칠후에야 나는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비밀아지트에서 강병창동지와 감격적인 상봉을 할수 있었다.

우리는 동대문곁에서 만났으나 남의 눈을 피하느라고 아지트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뜨겁게 포옹을 하고 그동안 밀렸던 회포를 마음껏 나눌수 있었다.

강병창동지는 경상남도 진주에서 해방을 맞아 진주시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선거되여 활동하다가 지난 10월 중순 리관술의 요구에 의해 서울로 올라왔다고 하였다.

나는 광주에서의 활동정형을 구체적으로 보고하고나서 한가지 우려되는것은 내가 이른바 중앙의 미군환영로선을 반대하여 싸우다가 테로까지 당한데 대하여 공산당과 《조선인민공화국》의 주요인물인 리관술이 어떤 태도를 취하겠는가 하는것이라고 솔직히 터놓았다.

그러자 강병창동지는 자기도 진주에서 활동할 때 미군을 반대하여 투쟁하였고 거의 모든 지방인민위원회들이 미군반대투쟁을 벌리였으며 지금에 와서는 리관술도 자기들이 정책상착오를 범하였다고 인정하면서 오히려 나에 대하여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있으니 조금도 걱정할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지금 공산당의 지도자로 나선 박헌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있는지 말해보라고 하는것이였다.

나는 광주에서 공산당결성을 위하여 나섰던 송종근동지가 박헌영일파의 책동으로 하여 무소속인사로 된 사연을 말하고나서 박헌영이 과연 어떤 사람이며 그에 대한 공산당지도층인물들, 특히 리관술의 태도가 어떤가에 대하여 솔직히 말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박헌영의 과거행적과 당시 공산당내부의 복잡한 형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게 되였다.

원래 박헌영은 경기고등보통학교를 다닐 때부터 영어를 좀 했다고 한다. 그래서 3. 1인민봉기이후 《동아일보》 기자로 있으면서 당시 연희전문학교 교장이던 미국선교사 언더우드와 친숙하게 교제하였다.

바로 그 언더우드가 해방후 남조선주둔 미군사령관인 하지의 정치고문으로 되였는데 박헌영의 뒤에서 은근히 도움을 주고있는것 같다는 소문이 공산당내부에서 조심스럽게 퍼지고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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