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수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제35회)

김흥곤

8. 준엄한 싸움

(5)

한편 박헌영은 로어에도 능하였는데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차 피압박민족회의》에 이르꾸쯔크파 《고려공산당》 대표의 한사람으로 참가한 후 화요파에 관여했다가 국제공산당에 의하여 조선공산당이 해산되자 울라지보스또크를 거쳐 모스크바로 가서 국제당이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며 국제당과의 《긴밀한》련계를 가졌다고 한다.

그 연줄로 해서인지 박헌영은 수시로 서울역앞에 있는 《쏘련군서울련락사무소》에 드나들며 그들의 비호밑에 당내지도권을 장악하고있다는 소문도 있다고 하였다.

박헌영은 자기를 《조선의 레닌》이라고 자처하면서 자기가 조직한 《공산당》본부를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라고 주장하면서 1945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창립된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를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북조선분국》이라고 우겨대고있다는것이였다.

이에 대하여 박헌영 다음가는 지도적위치를 차지하고있는 리현상, 김삼룡 등은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창건하시고 령도하시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가 마땅히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로 되여야 하며 서울의 《재건파》공산당은 남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로 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는것이였다. 그래서 공산당내부에서는 박헌영계와 리현상계가 서로 대립되고있는 상황인데 나를 직접 지도하고있는 리관술은 리현상계의 편에 서있다고 하였다.

강병창동지는 이러한 사정을 대충 알려주면서 내가 백남운선생의 서기로 활동하는 문제는 그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민족주의색채가 짙은 학자라고 박헌영계에서 배척하고있는 조건에서 리관술에게도 반영하지 않는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다.

그의 말을 듣고보니 나의 머리속에는 박헌영이 지도적위치에 틀고앉은 공산당이 내가 지금껏 생각해온것과 다르며 미꾸라지 한마리가 온 웅뎅이물을 흐린다고 박헌영때문에 구경 공산당내부도 그처럼 복잡한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박헌영개인이 결코 공산당은 아니며 오늘의 복잡한 사태도 장차 김일성장군님의 옳은 령도에 의하여 바로 잡히게 되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

앞으로 어떤 사업을 맡아했으면 좋겠는가고 묻는 강병창동지에게 나는 자신의 생각을 터놓았다.

《저는 로동자들이나 농민들속에서 사업해온 경험은 없고 단지 백남규, 백남운, 송종근선생을 비롯한 오랜 반일독립운동자들과 손잡고 서울과 광주에서 얼마간 투쟁을 하였을뿐입니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와보니 해방이 된 후 서울에만도 수많은 우익 및 중간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이 조직되였는데 공산당에서는 지도부내부의 복잡성때문인지 그들과의 사업에 대해서는 낯을 돌리지 않고 그저 덮어놓고 모두 밀몰아 배척하고있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런 우익적인 정당, 단체들의 지도자들속에도 지난날 일제를 반대하여 싸운 애국적이며 량심적인 인사들이 많은것만큼 그들에 대하여 조사장악하고 연구하여 김일성장군님의 령도를 따르는 정치세력으로 뭉치게 하는것이 중요한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산당안에 그런 애국인사들과 우익정당, 단체들과의 사업을 맡아보는 부서를 내오고 저도 그런 사업을 맡아했으면 합니다. 송종근동지나 강병창동지가 함께 그 사업을 하면서 지도해준다면 얼마든지 해낼수 있을것 같습니다. 만일 그런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백남운선생의 서기로 일하면서 저 혼자서라도 애국적인 인사들이 김일성장군님의 령도를 따르도록 이끌어주려고 합니다.》

강병창동지는 나의 의견을 적극 지지해주었다. 그날 저녁늦게까지도 리관술이 아지트로 돌아오지 않아 나는 다음날 그를 만나기로 하고 백남규선생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백선생이 마침 낮에 리관술을 만나 나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했더니 다음날 청운동아지트에서 만나자고 했다는것이였다.

그리하여 나는 다음날 오전 아지트에서 리관술과 강병창, 박락종을 함께 만나게 되였다.

무척 반가운 기색으로 나를 맞아준 리관술은 강병창동지와 백남규선생을 통하여 그동안 내가 진행한 공작정형에 대하여 들었다고 하면서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하자고 하는것이였다.

그는 지금 서울바닥에서는 해방후 저마다 애국자, 혁명가라고 자처하는자들이 정당과 단체를 내오고 지방에까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다툼을 하고있는데 그중 비교적 큰 정당은 좌익에서는 공산당과 조선인민당(당수 려운형), 우익에서는 한국민주당(당수 김성수)과 국민당(당수 안재홍)이라고 하면서 그런데 공산당안에는 아직 수십개의 군소정당들과 수백여개의 사회단체들, 애국인사들에 대하여 연구하고 대책을 세울수 있는 부서와 전문인원들이 없는데 이 문제에 대하여 내가 처음으로 제기한것은 아주 훌륭한것이라고 치하하였다. 그러면서 나와 강병창동지가 이 사업을 담당하여 수행할데 대한 과업을 주었다.

이렇게 되여 나는 공산당안에서 통일전선사업을 맡아 진행하게 되였다. 이것은 내가 조직적으로 받은 첫 분공이였다. 그것은 걸음마다 미제와 반동들의 악랄한 방해책동과 분렬책동을 짓부시며 싸워야 하는 어려운 투쟁이였다.

하지만 나는 일찌기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을 내놓으시고 전민족적인 통일전선조직인 조국광복회를 창건해주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사상과 의도대로 싸운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신심과 용기를 가지고 이 사업을 시작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조국통일의 구성으로,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그이의 충직한 전사로 살며 싸우리라! 이것이 그때 내가 다진 신념의 맹세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