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5, 2024
KCNA Naenara (Kr)

《글씨를 돈으로 바꿀수 없다》

Date: 23/09/2021 | Source: Naenara (Kr)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조선봉건왕조시기 명필로 이름있던 양사언(1517년-1584년)이 이웃나라에 갔을 때 있은 일이다.

양사언이 한 부자의 초청을 받아 집에 가니 방 한켠에 커다란 병풍이 세워져있었다.

《저 병풍에는 무슨 그림이 있습니까?》

양사언이 묻자 주인은 일어나 병풍을 펴보이였다. 그런데 새까만 공단을 씌운 병풍에는 그림 한폭, 글 한귀도 없었다.

《아니, 이런 병풍은 어디에 쓰시오?》

양사언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주인의 대답에 앞서 재차 물었다.

주인은 양사언의 호기심을 더 불러일으키려는듯 대답없이 병풍을 다 펴놓고서 말하였다.

《이 병풍은 우리 나라에서 글씨로 유명한 사람이 금분으로 글을 써주겠다고 해서 몇달을 두고 정성들여 만든것이요. 그분이 글씨를 써주겠다고 한 날이 오늘이니 좀더 앉아계시다가 그의 필체를 보고 가시는것이 어떠하겠소?》

원래 글씨에 흥미를 가지고있는 양사언인지라 마침 이웃나라의 명필을 보게 된것이 다행한 기회로 여겨져 동의하였다.

얼마 안되여 화구통을 든 명필이 찾아왔다. 그 사람은 손님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곧 글을 쓰려고 준비를 하였다. 그러면서 주인과 글값을 흥정하였다.

그 값은 상당히 높았다. 주인은 좀 난처해하면서도 나라적으로 손꼽히는 명필의 글씨를 받는다는 기쁨에 다른 의견이 없다고 하였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있던 양사언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명필이라는 사람이 글씨를 팔아먹는다는것은 글씨를 숭상하는 사람들을 모욕하는것으로 생각되기때문이였다.

그 사람이 준비를 다 갖추고 병풍에 글을 쓰기에 앞서 초지에 련습으로 붓놀림하는것을 보니 더우기 가만히 있을수가 없었다. 그 글체나 솜씨도 신통치 않았다. 글체를 담기에는 병풍이 아까웠고 게다가 값을 받아내는것이 불쾌하였다. 글씨에서는 남한테 양보를 하지 않는 양사언의 자존심이 솟구쳤다.

《가만, 내 한번 써봅시다.》

이렇게 말하면서 팔을 걷고나선 양사언은 누가 허락하건말건 큰 붓을 하나 쥐고 금분을 찍어서는 길게 펴놓은 병풍에다 마당에 물을 뿌리듯이 휙휙 뿌려나갔다.

《아니, 왜 이러시오?》

《이 좋은 병풍을 왜 어지럽히게 하시오?》

주인과 명필이라는 사람이 눈이 휘둥그래가지고 어쩔줄 몰라하였다.

양사언은 주인과 그 사람이 말릴 사이도 없이 열두폭병풍에 금분을 뿌려놓았다. 그는 한걸음 물러나서 마른 담벽이 비풍을 맞은듯 금분에 얼룩진 병풍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아니, 저렇게 아교에 이긴 금분을 뿌려놓은 병풍을 이제 어디에 쓴단 말이오?》

주인은 실망해서 방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잠간만 기다려보시오.》

양사언은 적당한 붓을 골라들고 병풍우에 휘두르는데 그 솜씨가 사공이 노젓듯, 학이 춤추듯 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조화랴.

붓을 쥔 그의 손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어지럽던 병풍면에 금빛찬란한 글체들이 완연히 나타났다. 조화롭게 어울린 글체들에 의해 이미 어지럽게 뿌려졌던 금박점들이 모두 묻혀버리였다.

주인은 벌떡 일어나 눈을 비비고 병풍을 바라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고 명필이라는 사람은 눈이 휘둥그래가지고 아무 말도 못하였다.

양사언이 그만 돌아가겠다고 하자 주인은 그런 훌륭한 글씨를 남겨주어 감사하다고 거듭 치하를 하며 그 값을 어떻게 치러야 하겠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제가 글씨를 배운것은 팔아먹자고 배운것이 아니니 어찌 돈으로 바꾸겠습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마시오.》라며 양사언은 흔연히 떠나갔다.

이때부터 양사언은 이웃나라에도 소문이 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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