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19, 2024
KCNA Arirang Meari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며 깨달은것은

Date: 14/10/2021 | Source: Arirang Meari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며칠전 나의 죽마고우 한명이 세상을 떠났다. 운명직전 그는 나의 손을 힘겹게 부여잡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오래전 자네와 함께 약속했던 묘향산… 못가보고 이렇게 죽게 되누만. 언제든 자네가 내 몫까지 합쳐…》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그는 숨을 거두었다.

원, 사람두! 륙십고개를 넘어 운명하면서도 젊은이들처럼 등산생각을 다 하다니. 허나 다음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는 단순한 등산얘기를 한게 아니였다. 6.25동란때 미군의 원자탄위협에 놀라 여기 남으로 내려온 그의 아버지고향이 바로 묘향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평남의 어느 산골이라고 했다.

친구의 유언마저 제대로 가려듣지 못할번했던 미안함을 안고 나는 다음날 추억깊은 덕수궁의 돌담길을 혼자 조용히 거닐게 되였다.

고색이 창연한 덕수궁에서 그 친구와 처음으로 북녘의 동포들을 직접 보게 된것은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48년전의 어느 봄날이였다.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후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회담들이 번갈아 진행되는 가운데 그날 서울회담에 참석하려고 온 평양손님들이 관례에 따라 유적중의 하나인 덕수궁참관에 나섰다. 어느사이 그 소문이 온 서울시내에 퍼져 나도 학우들과 함께 《평양사람구경》을 나갔던것이다. 덕수궁일대를 가득 메운 인파에 섞여 먼 발치에서나마 볼수 있었던 북동포들의 모습, 침착하고 온화한 얼굴로 서울시민들을 바라보며 정다운 미소도 보내주고 손도 흔들어주던 그들의 모습이 정말 어제런듯 선하다.

그날 친구들은 격정에 몸을 맡긴채 저저마다 웨쳤었다.

《엉? 저 사람들 봐. 머리우에 뿔도 없어. 얼굴도 새빨갛지 않구나.》, 《우리도 래년쯤엔 금강산, 묘향산에 수학려행갈수 있을가.》, 《야, 통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구나.》…

물론 나의 생각도 친구들과 다르지 않았다. 머지 않아 경평축구전도 다시 열리고 우리와 다를바 없는 북녘학우들과 손잡고 명산구경도 실컷 할수 있지 않을가 하는 희망이 저도 모르게 한껏 부풀어 올랐었다.

그렇지. 바로 그날 그 친구가 날더러 통일되면 자기 아버지의 고향에서 멀지 않은 묘향산에 꼭 가보자고, 자기가 아버지에게서 얘기를 많이 들어 실지 가본것 못지 않게 알고있으니 안내도 할수 있을거라며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분단 20여년만에 겨레의 가슴에 깃들었던 통일의 꿈은 말그대로의 일장춘몽이였다.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과 악화, 대결의 험로에 들어섰고 새 세기에 들어와 꿈같은 6. 15시대도 있었고 3년전의 남북화해모드도 있었건만 지금까지도 우리는 한많은 분단민족으로 남아있다. 10대의 홍안으로 통일의 환희에 들떠있던 나도 어느덧 귀밑머리가 하얗게 센 륙십대의 늙정이가 되여버렸고 나와 함께 묘향산에, 자기 아버지의 고향에 가보자던 죽마고우는 무정한 세월속에 저 세상 사람이 되여버리고말았다.

돌이켜보면 평화와 통일을 갈망하는 민족의 경주는 헤아릴수 없었건만 겨레의 가슴을 에이는 분단의 년륜은 해마다 어김없이 감겨지고있으니 어인 일인가. 우리 민족은 진정 무슨 리유로 오늘까지도 해묵은 력사의 한을 풀지 못한채 세인의 동정속에 분단의 아픔을 감수해야 하는것인가.

문득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듯 하여 머리를 들어 보니 괴물같은 건물 한채가 나의 앞을 가로막고있다. 바로 서울주재 미국대사의 관저 《하비브 하우스》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다 나면 반드시 선기를 느끼며 마주하게 되는 《하비브 하우스》, 어째서 눈에 띄울 때마다 똬리를 튼 독사를 보는듯 소름이 끼치는것일가. 겉을 보면 지붕도 외면도 분명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살린 한옥이다. 그러나 그 어떤 친근감도 생겨나지 않고 오히려 경계심과 반발심을 일으켜주는 이상한 집, 실지 들여다보면 미국대사의 편의를 위해 일반 한옥보다 천장을 높게 개축한 표리부동의 《미국식 한옥》이라는 사실때문일가.

그때문만도 아닐것이다. 이곳도 원래는 덕수궁터에 속하는 땅이였다. 미국정부가 전세계에 자국대사의 관저로 가지고있는 부동산들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 바로 《한국》주재 미국대사의 관저이다. 달리 말하면 그렇듯 오랜 력사를 가진 유적지에 일개 외국대사의 관저가 들어가있는것이다. 세상에 없는 수치가 아닐수 없다.

아니, 그 무엇보다 생동한 력사의 일치가 있다.  

미국대사관저의 옆에는 바로 116년전 이또 히로부미에 의해 《을사륵약》이 강요된 비운의 장소인 덕수궁 중명전이 서있다. 일제에 의한 국권상실의 비극을 상징하는 중명전과 나란히 자리잡고있는 미국대사관저, 116년전의 그날에는 이또 히로부미가 끌고온 왜군무력이 중명전을 포위하고 조선왕실의 대신들을 압박했다면 지금은 그 옆의 미국대사관저가 《한국》주재 외국대사관저중 유일무이한 특별경비구역으로서 어마어마한 철통경계로 주위를 압도하고있다.

담장우의 날카로운 철조망들과 물샐틈없는 경비초소들, 성벽처럼 촘촘히 늘어선 경찰의 시위진압뻐스와 담밖에 겹쌓여진 시커먼 방호벽들…

유적의 정서와 시민들의 산책길이 있는 서울도심의 분위기같은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갈데없는 식민지총독관저를 련상시키는 미국대사관저의 참으로 거칠고 횡포한 풍경이 강렬하게 시사해주는것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미국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촉수가 이 땅을 칭칭 감고있다는, 일본의 통치권을 그대로 물려받은 미국에 의해 반도의 절반땅이 여전히 예속과 굴종의 멍에를 쓰고있다는 사실이다.

슬프고 또 슬프지만 이것은 눈앞의 현실이 가르쳐주고있는 엄연한 진실이다. 그래서 누군가도 말한것 아니였을가. 덕수궁을 따라 돌아가는 좁고 구불거리는 돌담길에서는 슬픔이 배여 나온다고.

그렇다. 덕수궁의 돌담길이 말해주는 력사의 애섧은 진실은 《한국》이 장장 70여년째 미국의 속국으로 살아오고있다는것이다.

친구의 죽음이라는 충격때문이여서일가, 나에게는 그날 다시금 통절히 깨닫게 되는것이 있었다.

우리는 존엄잃은 국민이다. 이 땅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민족의 자주와 존엄이 살아있지 않다.

그러니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외세에 얽매이고 외세가 깔고앉은 땅에 민족의 숙원이 꽃필수 없다는것은.

먼저 간 나의 벗이 바라던 묘향산등정길은 바로 미국을 몰아내고 자주와 존엄을 되찾은 그날에야 비로소 실현될수 있을것임을 나는 새삼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신양천 - 서울 -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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