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23, 2022
KCNA Tongil Voice

빈자리와 무의식

Date: 18/10/2021 | Source: Tongil Voice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이 시간에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의 글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빈자리와 무의식》

찬비가 구질구질 내리던 지난 10월초, 그날 나는 문우들과의 만남을 위해 택시를 타고가던중 서울 중구 남산근처에서 내렸다. 아직 목적지까지 당도하려면 2~3분정도 더 걸려야 했지만 굳이 우산을 펴들고 비물이 튕기는 길을 걷고싶었다. 리유가 있었다.

며칠전 인천에 사는 막역한 친구와 전화상으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대개가 《코로나 19 펜데믹》 장기화로 인한 생활형편이며 건강상태, 준비하고있는 력사소설작품,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한 얘기였다. 이 과정에 내가 서울 중구에서 문우들과 문학토론회를 가지게 된다는것을 알려주자 그의 입에서는 일제식민지통치시기의 통감관저소리가 불쑥 튀여나왔다. 그가 하는 말이 내가 문학토론회를 가지게 되는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 바로 중구 남산유스호스텔로 접어드는 구배길에 400여년 나이먹은 은행나무가 서있는데 그 건너편에 있는 느티나무웃쪽이 바로 통감관저가 있던 자리라는것이다. 그러면서 그 일대가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이래 《중앙정보부》가 들어앉으면서 일반인들의 접근이 불허되고 후일 《안전기획부》가 딴곳으로 옮겨간 뒤 개방공간으로 변했을 때엔 작금의 사대행적이 서로 비교되는것을 두려워한 오세훈을 비롯한 보수정치인들에 의해 통감관저자리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고 통탄했다. 나중에 민중과 민족을 위해 의로운 붓대를 든 문인이라면 마땅히 《경술국치》의 현장에 꼭 가보고 진솔한 자기 견해가 담긴 글을 퍼내야 할것이라고 묵직하게 강조하는것이였다. 력사소설을 쓴다면서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나자신이 민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 친구의 권고대로 늦게나마 파란만장의 민족수난사가 굵직하게 얽혀져있는 자리를 밟아보고싶은 충동이 일어 이렇게 비물이 튕기는 길에 나서게 되였던것이다.

실지 가본즉 거기엔 《경술국치》의 현장임을 알려주는 그 어떤 표식같은것이 없었다. 식민지조선으로 전락되던 치욕의 순간을 목격하였을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만이 남아있어 겨우 터자리를 가늠해볼 정도였다.

텅 빈자리에 서고보니 생각되는게 많았다. 언제인가 어느 한 사진자료를 통해 보았던 2층건물의 통감관저가 눈앞에 비껴들더니 증오심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했던 침략자와 매국노의 흉상이 동시에 현시되며 속을 끓게 했다.

111년전 강도적방법으로 《조약》을 날조해낸 그날 만끽했던 통감 데라우찌 마사다께, 5천년력사국을 통채로 집어삼킨 포만에 흡족한 나머지 당일 일기의 말미에 《가가》라는 껄껄 웃음소리까지 덧붙여놓은 괴수...

그 무렵 눈섭하나 까딱하지 않고 일본에 나라를 섬겨바친 조선봉건정부 총리대신 리완용의 기분상태는 어떠했던가. 친일매국노의 일대기를 정리한 《일당기사》(1926년판)라는 도서에는 《... 전권위임장을 받아 곧장 통감관저에 가서 데라우찌통감과 회견하여 <한일합병조약>에 상호조인하고 동 위임장을 궁내부에 환납했다.》고 기술되여있다. 그야말로 침울함도, 주저함도 느낄수 없는 역신의 추악한 내면그대로였다.

두주먹이 저도모르게 불끈 쥐여졌다. 분노심은 더욱 격해졌다.

졸지에 국권을 잃었던 《경술국치》, 나라를 팔아먹은 역신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사대매국행위가 이 땅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단단히 신칙하기 위해서라도 여기에 표지석 하나 세워두어야 할것이 아닌가.

다음순간 허거픈 웃음이 절로 나옴을 금할수 없었다.

사대와 외세의존이 관행으로 되고있는 현 정치상황을 놓고볼 때 그러한 문제제기가 너무도 허망한것임을 감득했던것이다.

세기와 년대를 넘어오도록 《경술국치》의 현장에 아무러한 표식도 해두지 않고 텅 빈자리로 방치해둔것 그 자체가 민족자주정신이 부재한 위정자들의 무의식상태를 반증해주는것이 아니겠는가.

분석컨대 지난 세기 《한일합병》으로 나라가 일거에 망하게 된것은 일제의 강권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봉건정부내에 만연한 사대의존과 외세굴종사상 그리고 그로부터 산생된 정신적무기력에 기인된것이기도 하다.

정신적무기력에 빠져있기는 예나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적지 않은 여의도정치인들은 《한미동맹》이 곧 《국익》이라는 무지한 사고에 빠져 미국의 요구와 지시라면 조건반사적으로 무조건 수긍하는 태도를 보이고있다. 이러한 타성과 관습에서 헤여나오지 못하다나니 아직까지도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에 추종해 합동군사연습을 줄창 벌려놓고있는것이며 동족을 해칠 무력증강에 광분하고 주《한》미군유지를 위한 《방위비분담금》증액에 몰두하며 외세의 핵, 생화학무기배비에는 함구무언으로 일관하고있는것이다. 뿐만아니라 세계 곳곳에 민족문제를 들고다니며 《청탁외교》를 일삼고있다.

묻건대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에 공감한바가 있는 정치인들이 아닌가. 이러한 선언들의 핵이 민족자주, 민족자결임을 그들은 모르지 않을것이다. 국민들말대로 이러한 선언들을 무게있게 대하고 제대로 리행했더라면 민족의 화해단합과 《한》반도의 평화분위기가 고조되였을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분렬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두고 고심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나라와 민족들의 운명은 안중에 없이 저들의 패권적리익을 실현하는데 혈안이 된 외세, 특히나 민족분단을 산생시켰고 오늘까지도 이를 고취하는 미국에 계속 의존해서 민족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실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남을 따르면 저도모르게 비루하고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만다는것은 력사의 증명이다.

위정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류념해야 할줄로 안다. 100여년전 주변렬강들의 틈바구니속에서 사대한 나머지 나라의 주권을 여지없이 빼앗기고 수십년간 피눈물나는 노예생활을 강요당했던 치욕의 망국사가 반복되는것을 원치 않거든, 민족에게 리완용과 같은 역신의 몰골로 비쳐지지 않으려거든 이제라도 민족자주, 민족자결의 길로 결단코 돌아서야 한다고 본다.

정략적목적실현을 위한 민심유혹, 위선적인 《민생탐방》에 신경쓸것이 아니라 《경술국치》의 현장에 와서 표지석이라도 제대로 세우는 용단을 내려야 할것이고 치욕의 순간을 목격하였을 고목들과 마음속대화도 나누어보며 랭엄한 력사적교훈속에 자기의 무의식상태를 통절히 반성해보는 기회를 가질것을 당부하고싶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남산의 가을초목이 축축히 젖어들듯 내 마음속에 젖어드는 생각을 단재 신채호선생의 피절은 훈언으로 마감할가 한다.

《력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

지금까지 《한국문인협회》 회원의 글 《빈자리와 무의식》을 소개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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