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봉건왕조 제4대왕 세종시대에 윤회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도량이 크고 생각이 웅심깊었다.

윤회가 젊었을 때 있은 일이다.

어느날 그는 산간마을을 지나다가 해가 저물어 부득불 어느 한 집에서 묵어가게 되였다.

처음에 집주인은 윤회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나서 방이 없다는 구실을 대면서 들여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방이 없으면 마당에서라도 자게 해달라고 윤회가 거듭 사정을 해서야 주인은 미심쩍은 눈길을 감추지 못하면서 마지못해 들여놓았다.

《대단히 고맙소. 댁의 처마아래서라도 하루밤을 새우고 가겠소.》

윤회는 이렇게 말하면서 문안으로 들어와 뜰 한모퉁이에 자리잡고 앉았다.

이때 그의 앞에서는 네댓살 되여보이는 주인집아들이 무슨 구슬 하나를 가지고 놀고있었다.

아이는 구슬이 뜰에 떨어져 구는것도 모르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즐겁게 놀았다. 그러는 사이에 뜰안에 들어와있던 게사니가 이 구슬을 무슨 먹을것으로 알고 삼켜버리였다.

한참만에 제가 가지고 놀던 구슬이 없어진것을 깨달은 아이는 울상이 되여 여기저기 더듬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야말았다.

그것을 보고 주인도 뜰안을 헤매며 구슬을 찾았다.

구슬은 이미 게사니가 삼켜버렸으므로 뜰안에 있을리 없었다.

주인은 윤회의 초라한 모습을 새삼스럽게 훑어본 다음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네가 훔쳐서 감췄지?》

그는 얼굴을 붉히며 고함을 지르다가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와락 달려들어 윤회를 대문옆에 있는 나무에 결박해놓았다.

《오늘밤은 그대로 재우지만 래일아침만 되면 너를 관가에 끌고가겠다. 네가 도적 같아보여서 내가 너를 재우기 싫어한것이다.》

주인이 불그락푸르락하며 을러댔지만 윤회는 조금도 성을 내지 않았다.

《잘 알았소. 그런데 주인에게 청할것이 하나 있소.》

《청은 무슨 청이냐?》

주인은 눈을 부라리며 집어삼킬듯이 노려보았다.

《다른게 아니요. 저 게사니도 나처럼 이 나무에 붙들어매놓으면 좋겠소.》

윤회는 여전히 점잖은 태도로 천연스럽게 말하였다.

《무엇이? 네가 게사니까지 훔쳐갈 생각을 품고있는 모양이구나！》

《허허, 이 나무에 묶이운 내가 무슨 수로 그런짓을 하겠소. 두말말고 이 청만 들어주시오.》

이 말을 듣고 눈을 깜박이던 주인은 게사니를 끌어다가 나무에 붙들어매놓았다.

다음날 날이 밝자 주인은 윤회에게 《인젠 날이 밝았다. 이제 곧 너를 관가에 데리고 갈테다. 그 구슬은 대대로 물려오는 우리 집 보물이다. 훔친 구슬을 내놓아라！》 하면서 발을 구르며 호통쳤다.

그러나 윤회는 태연자약한 태도로 《그만 떠들어대고 게사니가 똥을 누었거든 그것을 헤쳐보시오.》 하고 일러주었다.

윤회의 말대로 주인이 가서보니 구슬의 절반은 게사니 똥속에 묻혔는데 나머지 절반이 로출되여 유난히 번쩍거리고있었다.

구슬을 찾아쥔 주인은 윤회에게 다가가 미안한 어조로 말하였다.

《어제 게사니가 구슬을 삼켰다고 말씀을 해주시였더라면 그런 욕을 당하시지 않았을터인데…》

한동안 주인의 말을 듣기만 하던 윤회는 마침내 껄껄 웃었다.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게사니가 구슬을 집어삼켰다.〉고 말했더라면 그대는 서슴지 않고 게사니의 배를 갈랐을것이네. 그러면 산 생명 하나가 없어졌을것이고 집재산이 줄었을게 아닌가. 그래 내가 한때의 모욕을 흔연히 넘긴것이니 여러말할것 없네.》

주인은 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땅에 넙죽이 엎드려 절을 하였다.

《손님은 성인이십니다. 참으로 산 신명이십니다. 게사니란 미물도 그 거룩하신 덕을 찬송할것이올시다.》

《착한 일을 하는자에게는 반드시 복이 오는것이네. 나의 이 말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두게.》

윤회는 하루밤 《신세》를 진 주인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는 후날 높은 벼슬에 올랐을뿐아니라 학자로서의 최고직인 대제학까지 되여 온 나라에 이름을 떨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