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출판

《정말 아니구, 난 벌써 멋진 제목까지 생각했는데 뭐. 〈웃음회전반〉하고 말이야.》

《가만가만. 뭐, 〈웃음회전반〉?! 야, 멋있구나.》

옥별이는 손벽까지 쳤다.

《어떻게 된거야?》

《어떻게 되긴, 동무따라 강남간다 그거지.》

은주는 사실 어제 부부장아저씨를 만났던것이다.

부부장아저씨는 깊은 밤 전화를 걸어오신 원수님께서 은주에 대하여 물으시던 일이 걱정되여 은주네 학교에서 온 소년단지도원선생도 만나고 또 은주와도 다시 만났다.

생각과 다르게 은주는 무척 쾌활한 아이였다. 미술소조에 대한 이야기를 비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나도 이젠 미술소조에 들어가기로 했어요. 난 원래 1학년땐 옥별이와 함께 미술소조에 있었거던요. 그림그리는건 자신있어요. 옥별인 벌써 밤을 새며 몇장 그렸는데 나도 빨리 그림을 그릴래요.》

아저씨의 둥실한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떠올랐다.

《그래? 그럼 됐구나. 이제부턴 네가 그리는 그림을 이 아저씨가 다 봐주겠다. 학생소년궁전에 다니면서 나도 그림을 좀 그려봤단다.…》

은주의 등을 두드려주던 아저씨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책상서랍에서 붓과 색감, 그림종이들을 한아름 꺼내 은주에게 안겨주었다. 그러고도 뭔가 모자란듯 머리를 기웃거리더니 어디로 급히 나가는것이였다.

조금 있어 들어온 아저씨의 손에는 단물이며 과일이 들어있는 구럭이 무겁게 들려있었다.

《이걸 가져다 동무들과 나누어먹어라.》

은주는 손을 빼며 뒤로 물러섰다.

《호실에도 많아요. 아저씨, 고맙습니다.》

소년단인사를 하고 출입문을 열고 나가는 은주를 바래우는 아저씨의 얼굴에 한시름 놓인듯 한 기색이 어렸다.

그날 저녁 은주는 일기장을 펼쳐놓았다.

《…나를 위해 마음쓰는 부부장아저씨앞에 정말 미안했다. 고맙기도 하고 또 빨리 결심을 내려야 내 마음도 안정될것 같아 오늘 드디여 미술소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수영소조생각이 계속 나면 어쩔가? 아니, 난 다신 수영을 안할래. 그림을 잘 그려 꼭 성공할테야. 그런데도 마음이 가볍지 않구나. 왜 이럴가?!… 차차 나아지겠지 뭐. 이제부턴 절대로 내색하지 말자. 나 하나가 뭐라고 어른들이 계속 마음쓰게 하겠어.…》

이렇게 쓰고나니 불현듯 수영선생님과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어쩐지 선생님과 아버지를 배반하는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수영경기에서 성과를 거둘 때마다 해병출신의 딸이 다르다며 그리고 기뻐하시던 아버지, 수영선수의 적성체질이라고 하시며 요구성을 더 높이군 하시던 선생님.…

저도 모르는새 물방울이 일기장우에 떨어졌다. 은주는 황급히 손을 눈가에 가져갔다. 눈물방울은 책장우에 서서히 동그라미를 그리며 퍼져나갔다. 하지만 자고 깨면 물방울은 온데간데없이 말라버릴것이였다. 은주는 자기의 허전한 마음도 그와 같이 사라져버릴것이라고 자기를 위안하였다.…

갖가지 새들의 아름다운 노래소리에 은주는 고개를 들었다.

《옥별아, 인젠 미술소조에 함께 다니자던 네 소원이 풀렸지?》

《그래그래! 호호.》

옥별이는 은주의 볼에 쪽 입을 맞추고는 저만치 달아나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