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19, 2024
KCNA Ryugyong

나의 인생총화 3분간의 이야기

Date: 21/03/2023 | Source: Ryugyong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허옥녀  재일본문학예술가동맹 오사까지부 고문

《나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초급부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우리 학교에서 배우는 손자, 손녀들이 다 건강하게 자라 전쟁도 민족차별도 없는 좋은 세상에서 자기의 인생을 마음껏 꽃피웠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지난 1월 29일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창립 70돐기념공연에서 한 나의 이야기이다.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 70돐기념공연의 한 장면

학생대표(재일동포4세), 청상회대표(재일동포3세), 그리고 고령자대표(재일동포2세)인 내가 순서대로 무대에 올라 희망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단 3분간의 출연이였지만 나는 꼬박 한달간이나 머리를 앓았다.

앞으로 손자, 손녀들이 어른이 되였을 때 어떻게 살아주기 바라는가를 이야기하자는것인데 20년, 30년후의 세상이 도대체 어찌되여있을가?

이 험악한 세상에서 손자들에게 무슨 희망을 안고살라고 말하겠는가.

매일처럼 들려오는 흉악한 사건들, 기막힌 전쟁보도들에 가슴은 미여지고 눈을 가리고만싶은데···

원고마감날은 자꾸만 다가오는데 책상머리에 앉아도 한줄도 원고를 못쓴채 새해를 맞이하게 되였다.

어떻게 할가. 포기할가. 무리하다고 팽개칠가. 오만가지 잡생각이 꼬리를 물고 튀여나왔다.

나는 다시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오사까조선고급학교(당시)를 졸업한지 어느새 5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큰일은 못할망정 오늘도 가슴펴고 살수 있은것은 무엇때문일가?

바로 나에게 조선사람의 넋을 심어주고 긍지를 안겨준 우리 학교가 있었기때문이 아닌가.

무슨 고민이 필요한가. 오직 한마음, 감사의 마음을 이야기하면 좋지 않겠는가.

방학숙제를 즐겁게 하는 손녀의 모습을 곁에서 보느라니 저도모르게 펜이 달리기 시작했다.

《…막내손녀가 어른이 되는 10년후, 엄마가 될 20년후, 증손자들이 배우게 될 30년후에도 일본땅 여기저기에 우리 학교가 뻐젓이 서있으면 좋겠습니다.…》

꾸밈없는 바람이였다. 가식도 과장이 없이 마음가는대로 써나갔다.

지난날 재일동포1세들이 어떻게 살아왔던가.

조국을 위해 동포들을 위해 신념을 잃지 않고 단결하여 싸워왔다.

초심에 돌아서서 진심으로 바라는것을 써나가니 단숨에 원고를 완성할수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랴.

자기가 쓴 원고인데도 암송을 하자니 하나도 머리에 안들어가는것이 아닌가.

원고를 록음하여 몇십번을 들었는지. 걸어가면서도 듣고 이부자리에서도 들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끝내 원고를 외울수가 없었다.

수십년간 외우기란 작업을 안해온 까닭에 로쇠된 나의 두뇌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것이다.

억울하고 창피하고 무력감을 느꼈지만 어찌하랴.

무대우에서 대사를 잊어 좌왕우왕하기보다는 차라리 원고를 손에 들고 출연하자고 결심한 나는 다른 출연자몫까지 표지를 곱게 만들어 기념공연날을 맞이했다.

총련습을 거쳐 드디여 맞이한 기념공연 《희망의 나래 우리의 노래》.

무대옆에서 출연하는 학생들의 름름한 모습을 보느라니 자꾸만 가슴이 울렁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의 금싸래기들!

우리들의 미래이며 희망인 우리 학생들!

누가 감히 우리 학교를 없애치우려고 날뛰고있는가!

지켜야 한다! 그 어떤 강바람이 분다 해도 우리 보배들을 지켜야 한다!

앞선 대표들의 멋진 이야기가 끝나고 드디여 나의 순번이다.

진심으로 우러러나오는 우리 재일동포2세의 마음을 전하자고 결심한 나에게는 이제 두려울것이 없었다.

한마디한마디 씹어먹듯이 말하였다.

장내를 뒤흔드는듯한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단 3분간의 나의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조국을 믿고 조직을 믿고 동포들과 함께 걸어온 나의 인생의 총화이기도 하였다.

기념공연무대에서의 필자(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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