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8, 2025Nov 18, 2025
KCNA Naenara (Kr)

새로운 묘사수법의 탐구자 리영윤

Date: 30/05/2023 | Source: Naenara (Kr)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16세기말 어느 따뜻한 봄날의 이른아침이였다.

환희로운 봄날과는 대조가 되게 아까부터 푸른 솔가지가 한아름이나 되게 우거진 나무밑에 맥없이 앉아있는 로인의 얼굴에는 먹장구름이 무겁게 실려있었다.

아침산책을 하느라고 청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솔숲으로 나오던 젊은이는 근심이 한껏 어린 로인의 모습을 보며 그의 곁으로 조심히 다가갔다.

《로인님, 어디 몸이라도 불편한게 아니십니까?》

정이 푹 배인 목소리로 다정히 묻는 젊은이의 말에 머리를 들어 바라보던 로인은 다시금 땅이 꺼지도록 한숨만 푸푸 내쉬였다.

《로인님,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그때에야 로인은 불평절반, 근심절반이 가득 실린 목소리로 하소연을 터놓기 시작하였다.

《내겐 에미없이 금이야옥이야 하며 애지중지 키워온 딸자식이 하나 있다네. 그 애가 이제는 다 자라 래일이면 당장 출가를 한다네.》

로인은 다시금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오르는 두눈을 슴벅이며 맥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아! 그래서⋯)

젊은이는 준수하게 생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로인의 두손을 꼭 잡았다.

《로인님, 댁의 따님이 출가를 한다는데 이보다 더 큰 경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섭섭은 해도 기쁜 마음으로 떠나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젊은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로인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더니 소매를 툭툭 털며 분연히 자리를 차고 일어서는것이였다.

《내가 딸애를 보내기 싫어서 그러는줄 아나? 남의 속은 알지도 못하면서⋯》

로인은 노여움이 한껏 어린 얼굴로 애꿎은 젊은이만 불평스럽게 쏘아보았다.

그러다가 제편에서 미안한지 다시금 느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고을에서 한다하는 화공에게 딸애잔치에 쓸 병풍을 부탁했는데 어디 그 사람이 짬을 내주어야지. 보름전부터 부탁했는데 어찌나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한달전부터 그려달라고 맡기고간 사람들도 다 못그려주었다지 않나. 그러니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로인은 두어깨를 맥없이 푹 내리떨군채 마치도 두발에 무거운 추라도 매단듯이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예? 병풍이요?》

병풍이라는 말에 젊은이는 다급히 로인을 불러세웠다.

《로인님, 혹시 제가 그려드리면 안되겠소이까?》

젊은이의 말에 로인은 자기의 두귀를 의심하며 성급히 발길을 돌렸다.

《젊은이가?》

로인은 젊은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로인은 도무지 젊은이에게 믿음이 가지 않는지 선자리에서 머리만 기웃거렸다.

그러나 젊은이의 두눈에는 자신심이 한껏 어려있었다.

《좋네. 그럼 밑져야 본전이라고 난 자넬 믿겠네. 그런데⋯》

로인은 뒤말을 채 잇지 못하며 젊은이의 얼굴만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속마음을 알았다는듯 젊은이는 빙그레 웃었다.

《로인님, 오늘 정오면 아마 마련이 있을것이오이다.》

젊은이가 하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로인은 대뜸 젊은이의 손을 덥석 부여잡으며 자기의 집으로 이끌었다.

집에 도착하기 바쁘게 로인은 젊은이앞에 정성껏 만든 명주천병풍을 쭉 펼쳐놓았다.

젊은이는 병풍의 크기를 가늠하더니만 이윽고 숙련된 솜씨로 붓대를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푸른 숲이 우거지고 따뜻한 봄날의 경치속에 한쌍의 원앙새가 서로 짝을 찾아 우짖는 모습, 온갖 새 지저귀는 꽃핀 동산에서 화려한 날개를 활짝 펼치고있는 한쌍의 아름다운 공작새, 꽃나무가지우에서 이리저리 날아예는 한쌍의 까치.

젊은이의 붓끝만을 주시하던 로인은 아무 말도 못하고 너무도 황홀하여 입만 벌리고있었다.

꽃이 위주로 되고 거기에 새들의 생활을 부차적으로 제시해주던 당시의 화조화의 보편적인 형상수법과는 달리 새들의 생활을 주도적으로 화면중심에 설정하고 배경에 꽃과 나무들을 배치하는 보다 새로운 묘사형식의 특색있는 화법이였다.

바로 이 젊은이가 묘사수법들을 새롭게 탐구하여 조선화의 전통적인 표현형식을 더욱 발전시켜나가는데 크게 기여한 리영윤이였다.

리영윤(1561년-1611년)은 형인 리경윤, 조카인 리징과 함께 풍경화, 동물화, 화조화 등에서 독특한 경지를 이룩하였다.

리영윤의 작품으로서는 현재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여있는《대》와 《못가의 해오라기》 그리고 화조병풍도인 《꽃과 원앙》, 《꽃과 공작》이 있다.

리영윤이 그때 로인에게 그려준 그림이 바로 화조병풍도인 《꽃과 원앙》, 《꽃과 공작》인것이다.

이 그림들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작품들이다.

원앙새와 공작새를 구도적중심에 묘사한 화면은 간결하게 처리되여야 할 뒤부분이 정리되지 못하고 복잡한감은 있으나 화면이 밝고 선명하게 느껴져 친근하고 향토적인 맛을 안겨준다.

이처럼 리영윤은 묘사수법들을 새롭게 탐구하여 조선화의 전통적인 표현형식을 더욱 발전시켜나가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김일성 종합대학 실장 박사 부교수 강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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