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2, 2024
KCNA Tongil Voice

너를 바치라(11)

Date: 06/01/2024 | Source: Tongil Voice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단편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주흥건 작 《너를 바치라》, 오늘은 열한번째시간입니다.

유민은 그리로 천천히 다가갔다. 몇발자국앞에 이르렀을 때 눈에 먼저 안겨든것은 웃옷주머니에 깊숙이 질러넣은 오른손이였다.

그는 떨리는 눈빛으로 녀인을 이윽토록 여겨보았다. 왜 이렇게 낯설어만 보일가? 려동무가 분명한데! 채 아물지 않은 화상자국이 녀인에게서 이전의 아름다움을 뭉청 가리워버린때문일가?

그는 가슴이 미여지는 속에 젖어드는 목소리로 《려동무!》 하고 불렀다.

《동문 어쩌면… 어쩌면 그리도 모질수가 있소. 한마디 의논도 없이 론문을 발표해치우다니… 자기대신 남의 이름을 올려서…》

진숙은 실눈을 잔조롬하게 뜨고있었는데 눈물이 맺힌 속눈섭이 가늘게 떨리고있었다. 하지만 입가에는 애써 미소를 짓고있었다.

《그러니 내가 론문을 발표한줄 짐작하셨군요.》

《아무리 바보인들 그걸 생각 못하겠소. 나와 안해가 다름아닌 이전의 공동연구자였다는걸 아는 사람이야 려동무뿐이니 십분 우리부부의 이름으로 론문을 발표했을것이라고 생각했지.》

《연구사선생은 론문발표가 나의〈소행〉인줄 아시면서도 왜 애아버지한테서 모욕을 받을 땐 내내 참기만 하셨어요? 어제 오후에 애아버지가 전화로 내 작간이 아닌가고 따지더군요. 사실대로 인정했더니 한절반 짐작은 했겠으면서도 날 막 욕하더군요. 왜 미리 알리지 않았는가, 그랬더라면 애매한 연구사를 오해하는 일이 없었을게 아닌가 하고요.》

이 말을 하면서 진숙은 유민에게 옆에 앉으라고 자리를 권했다.

그러나 그는 앉지 않았고 그냥 서있었다.

《내가 까밝힌들 부기사장동지 속이 풀리겠소? 글쎄 이게 무슨 꼴인가 말이요. 려동문 몸을 상하고 연구사업을 더 못하게 되였는데 난 량심도 없이 학위요, 발명권이요 하는 달갑지도 않은 월계관을 잔뜩 받아안게 되였으니…》

다시금 죄의식에 사로잡힌 유민은 고개를 떨구었다.

《왜 그랬소? 꼭 그래야만 했나 말이요?》

《그게 무슨 큰일이라구… 사실 미안한건 나예요.》

진숙은 기어코 유민더러 옆자리에 앉으라며 말했다.

《이리로 후송되여올 때 난 정말이지 죄스러웠어요. 연구사선생에게 모든 짐을 걸머지워놓은셈이였으니까요. 치료를 받으면서 생각했지요. 〈ㅌ―2〉호를 위해 내가 해놓은건 뭐고 이제 할수 있는건 무엇일가 하고요. 참, 정아가 보고싶어요.》

《정아 말이요? 저기 같이 왔소. 내 당장…》

유민이 즉시 자리를 차고일어나는것을 진숙이 만류했다.

《그만둬요. 이 꼴로 그애앞에 나설순 없어요. 공부를 잘해 이담에 쟁쟁한 녀학자가 되면 만나겠어요. 그때 가선 아예 우리 집에 데려와야지요. 물론 내가 아니라 이애가요.》

진숙은 이 말을 하면서 아들애를 더 꼭 껴안았는데 저로서도 우스운지 소리없이 웃고있었다.

《허허, 려동무두 참, 어린애들을 놓고 별 싱거운 소릴 다… 참, 부기사장동지가 보낸 연구자료책을 돌려주오. 난 내 할바를 해야겠소.》



정아는 잠시 손전화기를 귀에서 떼며 고개를 푹 떨구었다.

《정아야, 아버지 말을 듣니? 너 우는게 아니냐?》

손전화기에서 아버지의 다우쳐묻는 소리가 거듭 울려서야 정아는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 내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가요?》

《그들을 도와야 한다. 도울 방도는 하나다. 네 연구자료를 공장구내망에 공개하고 성림이의 조수가 되여 돕거라. 이 아버지마음까지 합쳐서! 그렇게 되면 지배인도 더 막지 않을거다. 그럼 부탁한다.》

정아는 손전화기를 든 손을 내리우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가슴속을 무겁게 짓누르던 천근바위가 산산이 부서져달아난듯 마음이 가볍고 정신이 맑아진듯했다. 하늘에서는 어느새 중천에 떠오른 해가 미소속에 대지를 내려다보며 따스한 빛살의 손길로 처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어루쓸어주고있었다.

한겨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봄날에 가까운 날씨였다.

정아는 여전히 고개를 하늘로 향한채 이윽토록 서있었다. 스르르 눈이 감기였다. 백광을 발산하던 해는 온데간데 없고 붉은 장막이 앞을 덮자 그우에 한 녀인의 얼굴이 그려졌다.

(어머니, 나도 그렇게 살고싶어요! 스무해전에 우리 아버지를 도와 자신을 깡그리 바쳤듯이 이제는 제가 모든것을 바쳐 성림동무를 도우렵니다!)

지금까지 단편소설 《너를 바치라》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열한번째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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