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6, 2024
KCNA Tongil Voice

너를 바치라(12)

Date: 08/01/2024 | Source: Tongil Voice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단편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주흥건 작 《너를 바치라》, 오늘은 열두번째시간입니다.

6

행정청사에 잇달려 자리잡은 과학기술보급실에서 정아가 나온것은 황혼이 깃들무렵이였다. 현관문을 나섰지만 왜서인지 발걸음이 무거워났다.

피곤이 몰려서일가? 하긴 점심에 공장합숙에서 밥술을 뜨는둥마는둥하다가 곧장 여기로 온 뒤 오후내껏 콤퓨터앞에서 시간가는줄 몰랐으니 머리가 어지러울만도 했다.

처음에는 자기의 연구자료를 구내망에 띄우고는 돌아설 작정이였는데 뜻밖에도 《ㅌ―8》호연구자료가 또 하나 망에 올라있기에 호기심에 끌려 들이팠던것이다.

그것은 필경 성림을 조장으로 하는 공업시험소의 첨가제개발조가 2년간 축적한 실험자료일것이였다.

정아는 몇번 반복해 읽으면서 모든 실험이 생산현장의 실제조건들에 준하여 진행된것과 같은 우점들도 있고 또 참고할 가치도 적지 않았지만 무엇인가 석연치 않다는것을 느꼈다.

어떻게 할것인가?

생각에 잠겨 계단을 내려서는데 앞에 성림이 막아서있지 않는가!

《기다리는 일이 제일 힘들다는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만. 자, 갑시다. 지배인동지가 집에서 찾습니다.》

《집에서요?》 정아는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성림을 치떠보았다.

《헌데 기다릴것까지야 있어요? 손전화로 알려도 될텐데.》

《그럴수도 있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꼭 데려와야 한다고 당부해서 예까지 온겁니다.》

성림의 말에 정아는 마침 지배인을 만나 자기의 결심을 밝히려던 참이였던지라 더 생각해보지 않고 성림을 따라섰다.

공장정문을 나선 그들이 주택지구의 어느 수수한 단층집까지 가닿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성림이 착실히 열어주는 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선 정아는 토방가에 이르러 더 움직일념을 못했다.

불빛이 새여나오는 방문의 틈새로 지배인 내외가 집안에서 한창 옥신각신하는 말소리가 들렸던것이다.

《나도 그 처녀의 연구안이 좋다는것을 알고있소. 공장을 책임진 내가 그래 어느것이 좋고 나쁜지도 분간 못하겠소?》

《다 아신다면서 한사코 부정할건 뭐예요?》

듣기 거북해난 정아가 자리를 피하려는데 곁에 다가선 성림이 그럴 필요는 없노라고 했다. 태연히 토방에 걸터앉은 성림이 옆에 자리를 권했으나 정아는 고집스레 서있었다.

《당신 말대로 우리 성림이가 그 처녀와 공동연구를 한다 치기요. 그렇게 되면 성림이는 연구안은 둘째치고라도 의례히 그 처녀를 주연구자로 내세울거요. 그리구 〈ㅌ―8〉호가 성공하게 되면 당신이 일전에 그랬던것처럼 그 본을 따를게구. 아무렴 당신을 닮은 애가 아니요?》

《그게 그리도 마음에 내려가지 않으세요? 이러나저러나간에 새 첨가제가 성공하여 공장생산에 기여하면 그만이 아니겠어요.》

안해는 남편처럼 언성을 높이지는 않으면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만에야 남편은 애써 입에 담지 않았던 아픈 말을 서슴없이 내뱉았다.

《그런즉 당신은 자기의 과거를 기어코 그애한테 되풀이시키겠단거지? 난 도무지 모르겠구만. 당신 한사람의 희생이면 됐지 왜 아들한테까지 그걸 강요하는지… 어이휴―》

긴 한숨과 함께 자리를 차고 일어선 지배인은 속이 답답해났던지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 순간 지배인의 두눈에 삽시에 당황한 빛이 돌았다. 그것은 마당에 서있는 처녀연구사와 정면으로 눈길이 마주쳤기때문이였다.

《그러니… 다 들었겠구만.》

정아는 구태여 숨기려 하지 않았다.

《방금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정아는 눈 한번 깜빡 않고 태연스레 단언했다. 지금이 자기 결심을 터놓는데는 더없이 좋은 기회로 생각되였던것이다.

《나도 그렇고 아버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버진 나더러 스무해세월 늘 죄스러웠던 자신의 마음까지 합쳐 성림동무를 도우라고 당부했습니다. 공동연구를 승인하신다면 주연구자는 성림동무가 될것이고 허락 못하시겠다면 난 조수라도 되렵니다. 하여튼 난 사심없이 도울것이며 나를 아낌없이 바치렵니다.》

정아는 미리 외워둔 말은 아니였지만 거침없이 진심을 터놓았다.

지금까지 단편소설 《너를 바치라》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열두번째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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